필리핀 여객선 화재 후 대형 해운사들, 전기차 승선 전면 금지
필리핀의 대형 해운사들이 화물선 '주노 아스터(June Aster)'호 화재 사고 이후 전기차(EV)와 하이브리드 전기차(HEV)의 선박 탑승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에 잇따라 나섰다.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전기차 배터리가 지목되면서, 필리핀 해운업계 전반에 긴급 안전 점검과 규제 강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 최대 페리 운영사 중 하나인 몬테네그로 해운(Montenegro Shipping Lines, Inc., MSLI)은 지난 9월 16일 모든 선박 마스터에게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탑승을 금지하는 내용의 메모를 발령했다. 이 조치는 발령 즉시 효력을 발휘했으며, 필리핀 내에서도 특히 교통량이 많은 칼라판-바탕가스 노선을 포함한 전 노선에 적용된다. 뒤이어 쇼군 십스(Shogun Ships Co., Inc.)가 운영하는 아일랜드 워터(Island Water) 역시 9월 17일부로 동일한 조치를 시행했다. 회사 측은 배터리 시스템과 관련된 해양 안전 기준 및 위험 관리 필요성을 근거로 들며, 화재와 폭발, 열폭주(thermal runaway) 등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 조치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발생한 화재 당시 페리는 승객 정원 330명 규모였으며, 오토바이 여러 대와 지게차, 픽업트럭 등과 함께 전기차 1대가 실려 있었던 것으로 해안경비대는 밝혔다. 필리핀 해양산업청(MARINA)은 생존자 증언을 토대로 선내에서 연속적인 폭발음이 들린 뒤 화재가 발생했다고 설명했으나, 정확한 발화 원인은 아직 공식 조사 결과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 해운사 차원의 조치가 확산될 경우, 다도해 국가인 필리핀에서 섬과 섬을 잇는 이동 수단으로 전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필리핀은 육상 교통망이 단절된 지역이 많아 페리가 유일한 차량 이동 수단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전기차 소유주들은 앞으로 도서 지역 이동 시 대체 교통수단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는 최근 확대되고 있는 전기차 보급 정책과도 상충할 수 있어, 친환경차 전환을 추진해온 소비자와 업계에 적지 않은 혼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필리핀 해운·해양안전 당국 차원의 전국적인 통일 지침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각 해운사가 개별적으로 규제를 부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노선과 운영사에 따라 전기차 탑승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명확한 국가 차원의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