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선포 54주년, 마닐라 곳곳서 반부패 시위… "부패 종식과 권력 세습 타파" 촉구

필리핀 계엄령 선포 54주년을 맞은 9월 21일, 마닐라 곳곳에서 청년 및 학생 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시위는 만연한 부패의 종식과 정치 가문의 권력 세습 타파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채워졌으며, 참가자들은 최근 불거진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 단순한 구속이나 의회 청문회, 형식적인 조사 수준을 넘어 실질적이고 철저한 책임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이날 시위는 EDSA 피플파워 기념비, 멘디올라, 리와상 보니파시오 등 마닐라의 상징적인 장소들을 중심으로 예고됐다. 반부패 시민단체인 킬루상 바얀 콘트라 쿠라콧(KPKK)은 오후 3시 리와상 보니파시오에서 집회를 열었고, 이어 마카바얀 계열 정당이 합류해 오후 5시 멘디올라에서 정부의 책임 규명과 역사적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행진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지난해 정부의 홍수통제 사업 부패 의혹에 항의하며 대규모로 열렸던 이른바 '조 페소 행진' 1주년이기도 해, 시위 열기를 더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외곽 지역에서도 부패 규탄 목소리가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까라바르손 지역에서는 바탕가스와 민도로의 홍수 피해 대응 미흡, 유류비 상승에 따른 생필품 물가 부담 등을 이유로 별도의 시위가 계획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 국가경찰은 이번 계엄령 기념일을 앞두고 전국에 1만 7천 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측은 이번 54주년 기념 시위와 관련해 사전에 정식 집회 허가를 받은 단체는 없었다고 밝혔으나, 별다른 물리적 충돌 없이 시위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거리 시위와 별개로 계엄령의 역사를 되짚는 다양한 행사도 함께 열렸다. 여러 시민사회 단체와 대학가에서는 교육 포럼과 영화 상영회, 예술 전시 등을 마련해 계엄령 시기의 인권 유린을 조명했다. 필리핀대학교 세부 캠퍼스에서는 마르코스 독재 희생자를 기리는 '1081 전시회'가 열렸고, 필리핀대학교 바기오 캠퍼스에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대안 교육 세션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엄령 기념일 시위는 단순한 과거사 조명을 넘어, 최근 불거진 정부 사업 관련 부패 의혹과 맞물려 필리핀 사회 전반에 걸친 뿌리 깊은 정치 불신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위 참가자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은 앞으로도 책임 규명을 위한 목소리를 이어갈 뜻을 밝히고 있어, 정부의 후속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